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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공황장애 이야기 (9)
나만재밌으면돼
공황장애를 이겨내기 위해 나는 일단 바쁘게 움직여보기로 했습니다 야간 일을 하긴 하지만 아침에 퇴근 후 여유시간에 최대한 산책을 해보았죠. 아직 사람이 많이 있는 곳은 움직이기가 너무 힘들어서 최대한 사람이 없는 곳을 다녔어요. 걷다가 심장이나 불안장애가 생기면 걷다가 멈추더라도 최대한 산책을 했어요. 그리고 피곤함이 몰려올 때쯤 산책로를 내려와 집에서 눈을 감고 안대까지 착용해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도록 했어요. 예전에 저였으면 여유시간이 있으면 컴퓨터 게임을 했을 거예요 ㅎ 그렇게 일어나서 준비를 하고 밤에 출근을 하고 출근을 해서도 최대한 밝게 생활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리고 아주머니들과도 최대한 농담도 하려고 했고요. 전 저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하려고 했어요. 그리고 사실 ... 병원에서 선생님이 숙..
공황장애로 하루를 사는 건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괴롭습니다. 여러분들은 티브이나 인터넷 매체를 통해 가볍게 전달받으신 분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 가벼움에 시선 때문에 굉장히 고통스러워하는 공황장애 환우 분들이 많습니다. 저는 1년간 친구들을 딱 2번 만났습니다.(공황발작을 보이는 게 부끄러웠습니다) 저는 1년간 집안에서 베란다로 본 햇살밖에 머릿속에 기억이 없습니다. 저는 엄청나게 활달하고 낚시 좋아하고 여행 좋아하는 예전에 저는 없어졌습니다. 비행기도 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자살을 기획하고 실행까지 했습니다. 자이 게 제가 가장 큰 공황장애 이슈였습니다. 그럼 어떻게 극복했을까요. 저는 첫 번째로 사람들에게 저의 공황장애 사실을 알렸습니다. (쉽잖아?) 어렵습니다. 이 말을 하는데 1년이..
공황극복일지에요! 1년 동안 허무한 생활을 했던 저인데. 정말 웃기게 말해서 화장실에서 일을 보면서도 공황장애가 올 정도였어요. 그러다가 얼마나 답답하셨을까요. 저희 어머니는 저에게 아는 지인에 일자리를 소개해 주셨어요. 그렇게 해서 주방보조로 일을 시작했어요. 야간 사내식당 주방보조였는데 일은 힘든 것보다 피곤함과의 싸움이었어요. 매일 낮에 자고 밤에 일하는 생활을 했죠. 그리고 주방장님이 많이 보살펴주신 거 같아요. 제가 공황이란 걸 미리 알리고 만약 좀 힘들어하는 내색이 보이면 괜찮냐고 많이 물어봐 주셨어요. 너무나 고마웠죠. 근데 사람들에게 배식을 할 때 일하시는 분들이 말을 건네시는 게 너무 힘이 들었어요. 절대 나쁜 말을 하시는 게 아니고 젊은 친구가 주방에서 열심히 일한다고 칭찬을 하시는데도..
일단 저번에 이어서 쓰자면 저의 공황장애 진단명을 알려드릴게요! 제가 받은 진단명은 불명확? 한 공황장애. 스토리 없는 불안장애래요. 어떤 사람은 버스를 타거나. 어떤 사람은 갇혀있거나. 어떤 사람은 사람이 많은 곳에 있거나. 그런 조건이 묻는데 저는 조건 없는 불안장애. 버스를 타서 공황장애가 올 때가 있었고. 자가용을 운전하다가도 아무 의미 없이 공황장애가 온 적도 있고요. 아무 스토리 없이 오는 공황장애였어요. 그래서 더 힘들었던 같아요. 항상 주머니에는 검은 비닐봉지를 넣고 있었어요. 안 그러면 불안해서 돌아다니지 못했거든요. 과호흡이 올 때를 대비해서 입에 씌우고 쉬려고요. 일단 1년 동안 일을 안 했어요 그 1년 동안 제가 제일 많이 본 장면은 햇살에 비친 배란다였어요. 매일 힘 없이 누워서 ..
저의 공황장애를 이해받게된 일지에요! 댓글로 저를 많이 걱정해주시는 분들이 계시더라구요! 저는 9년간에 과정을 앓고 있었고 현재는 완치 되었는데 그전에 있었던 스토리를 써드리는 거랍니다. 모두 걱정해주신분들 감사해요! 병원에서 기다리면서 사람들을 훑어보고 있었어요. 지극히 정상적인 분들이 보이더라고요. 제가 상상했던 드라마 영화 때문에 다 배려놨어요 ㅠㅠ 겁만 잔뜩 먹어서 들어갔더랬죠. 대기시간이 1시간이 걸린다고 해서 사람들 구경을 하다가 옆에 바로 꽃 가게 겸 카페가 있더라고요. 들어가니까 우와~ 너무 정원같이 꾸며놓으신 거예요. 거기서 커피 한 잔 먹고 있는데 너무 심신이 안정되는 거 있죠. 그때 당시 나이도 어렸고 꽃도 별로 안 좋아했는데 정신병원 옆에 꽃 가게 카페라.. 뭔가 어울리는 거 같아요..
선생님 말씀을 듣고 공황장애에 대해 인터넷에 검색하기 시작했어요. 제가 느껴졌던 증상들이 그대로 있더라고요. 몸에 마비가 오는 이유는 과호흡으로 인해 이산화탄소가 많이 빠져나가 혈관이 축소되는 거래요. 그래서 영화 보시면 비행기에서 종이봉투 같은 거 쓰시는 분들 간혹 있죠? 그게 이산화탄소가 밖으로 돌지 않고 다시 호흡할 수 있도록 종이봉투를 쓰는 거라고 하드라고요. 네 그렇다고 하네요. 출처는 헤아림 한의원에서 퍼 왔습니다. 이런 증상이 저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생긴 증상이었어요. 그래서 찾아간 유명한 병원을 갔는데 생각보다 지극히 정상적인 모습(겉모습) 분들이 상당수였어요 제가 드라마나 영화로 접한 정신병원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죠 진료를 기다리며 저는 이리저리 사람들을 훑어봤어요, 저 사람은 어디..
공황장애를 인지한 건 오래 걸렸어요. 심장 덜컹거림, 혹은 자꾸 사망 플래그? 가 머릿속에 그려지는 거. 택시를 타도 택시가 신호위반을 해서 부딪혀서 차 사고가 나는 상상 모든 죽음과 관련된 상상이 되었고 너무나 힘들었어요. 그리고 과호흡이 발생됐고 그때마다 마음을 추슬러야 했죠. 어느 순간 친구가 말했어요. 너 많이 힘들어 보이는데 강가 가서 마음 좀 힐링해 보자. 그래서 시내 천에 나가서 낚싯대를 빌려서 낚시를 해봤어요, 오랜만에 나온 거라 마음이 너무 설렜어요, 근데 역시나 친구와 낚시 중. 해가지고 어두워질 때쯤 마음속에서 불안이 그려졌어요 "여기 수심은 얼마나 깊을까." "보이지 않는 곳에 발을 디디다가 빠지면 내가 나올 수 있을까." (수영을 못하고 물 공포증이 있어요) 그 순간 또 호흡이 가..
"가장"이라는 단어는 굉장히 무거웠어요. 다시 사회로 돌아온 저는 지금까지 제대자부터 제대 후까지 모아놓았던 2000만 원과 대출 4000을 받아서 아버지 병원비에 지불해야 했어요. 아버지 병원비에 돈이 아까웠냐고요? 네 아주 많이요 저는 꿈이 독일에 가서 축구를 보며 유럽여행을 25살 이전에 하는 것이 저의 꿈이었어요. 그 꿈만 생각하며 다이어리에 독일 축제 등 여러 가지를 적어놓았죠. 아버지 장을 치르고 집에서 와서 처음 한일은 아버지 옷을 태우며 저의 여행 다이어리도 같이 태운 일이었어요. 저는 0이 되었거든요. 그러면서 제 마음도 0이 되었던 거 같아요. 아무것도 없는 공허함. 사회로 돌아와 일을 했지만 툭하면 눈물이 났어요. 이유는 모르겠어요. 주변 사람들이 놀래서 식당 뒤편에 숨어서 울다가 다..
안녕하세요~ 여러분들에게 생소하고 자주듣던이야기지요? 누군가는 알고있는이야기 공황장애에 대해 설명드릴려고해요. 네이버에서 공황장애를 검색해볼게요. 공황 장애 (恐慌障礙) [의학 ] 뚜렷한 근거나 이유 없이 갑자기 심한 불안과 공포를 느끼는 공황 발작이 되풀이해서 일어나는 병. 공황 발작이 일어나면 심장이 빨리 뛰고 호흡이 가빠지는 등의 증상을 보이며 곧 죽을 것 같은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맞습니다. 그렇다네요? 역시 초록창! 자 그럼 저의 공황장애 극복일지 이제 시작합니다. 첫 발달은 군 제대로 거슬러올라갑니다. 저는 아버지랑 사이가 좋지 못했어요. 가부장적이신 분이었고 남자는 남자는 저에게 강요하시는 부분이 많으셨어요. 그런 아버지가 제가 군대에 입대한 사이 수척해지시고 암에 걸리셨어요 그래도 저에게..